이 책은 동양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리 슐레비츠가 류 청유안이라는 이가 쓴 중국의 한시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책이다. 유리 슐레비츠는 고대 중국시의 정수를 자기 나름의 말수적은 이야기와 시적이다시피한 그림에 담아 표현하였다. 이 맑은 수채 그림에는 순간순간 달라지는 동트는 광경이 고요하고 차분하게 담겨 있다. 중국 고대시와 밝아오는 새벽 정경은 이 슐레비츠에게로 와서 그대로 영원히 못 잊을 한 편의 드라마가 된다.

달빛 교교한 고요한 밤에 호숫가에 있는 한 나무 아래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담요를 덮고 웅크리고 있다.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늘을 나는 박쥐 한 마리와 개구리 몇 마리, 호수의 물결과 나뭇잎에 스치는 산들바람뿐이다. 그러나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검푸름은 두 곱은 느려진 초침이 돌아가듯 아주 서서히 엷어진다. 멀리서 아침을 몰고 오는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하자마자, 할아버지와 손자는 짐을 챙긴 뒤에 배를 저어 호수로 나아간다. 두 사람이 호수 한가운데에 이르자 갑자기 마술이 펼쳐진다. 한순간에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걷히고 세상은 활짝 열려 온통 초록빛 천지가 된다. 아득한 태고적부터 여태까지 세상의 모든 아침은 이와 똑같이 열려왔다. 그러나 날마다 똑같은 아침도 누구의 눈에 포착되느냐에 따라 이처럼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또다른 아침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것으로 묻혀버리기도 한다. 슐레비츠의 “낯설게 하기”를 통해서 일상적인 자연의 변화는 예술이라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 책은 검푸른 빛으로 표현되는 축축하고 어두컴컴한 새벽 호숫가에서 시작되어 움직임과 따스함이 있는 아침 산에서 끝난다. 새벽의 침묵은, 새벽의 어둠은, 새벽의 추위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그림이고 이야기일 수 있지만, 여기서는 아침의 속삭임을, 아침의 찬란함을, 아침의 따뜻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기도 하다. 어둠은 밝음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고, 밝음은 어둠을 통해서 더욱 찬연히 빛난다. 어둠에 갇힌 온갖 물상들은 빛을 통해서 아침마다 새로 태어난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탄생의 드라마이다. 탄생은 곧 희망과 동의어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간 그 아침의 세계는 금빛 해가 타오르는 희망의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