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부들부들 패배일지 공모전 수상 발표

2024.02.29

 
 
2024년2월7일부터2월21일까지 진행한 부들부들 패배일지 공모전!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공모전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사연 하나 하나 빠지지 않게 다 읽고10분을 선정해
독자 투표를 진행했는데요:)
 
이 세상의 감자들을 위한
부들부들 패배일지 공모전 수상작
함께 읽어볼까요?
 
1등: 고며느리
 2등: 식단관리중
 3등: 정지민
 감자상: 6195, 포뢰
 
 수상자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수상 관련하여 차주 중으로 안내드릴 예정입니다:)
 
▼1등<고며느리>님 에피소드(이번만큼은 제사의 ㅈ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2022년10월의 기록.
어제는 할머님의 제사였다. 이 감정으론 제사의‘ㅈ’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이번 제사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그동안 불편한 감정을 감수하며 시댁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남편을 향한 마음이었지 시어른들을 향한 마음은 아니라고, 어떤 일이든 당연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내 얘기는 그저 편 가르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내 일과 내 일 아닌 것이 어디 있냐며 지금 본인에게 한 이야기들을 어른들 앞에서도 할 수 있다면 제사에 가지 말라고 했다. 왜 못해? 나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사 다음 날, 둘째 아이의 등원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님’ 세 글자가 화면 위에 떠올랐다. 일단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오전 중에 보면 좋겠다. 시간 될 때 전화해 줘.’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놓고 밀린 집안일을 시작했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 분명 공기는 차가운데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님’…
전화를 받았다. 하실 말씀이 있다길래 전화로 말씀하시라 하니 굳이 얼굴을 봐야 한다고 하셨다. 할 말이 아주 많다고 하셨다. 점심 즈음 어머님이 계신 공방으로 찾아갔다.
“너네 싸웠니?” “무슨 일이니?”, “우리(시부모님)랑 관련된 일이니?”
“네. 싸웠어요.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일은 아니에요.”
짧은 대답 후2시간이 넘도록 어머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너는 며느리고, 며느리에겐 의무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 준비와 참여다. 특별히 아파 쓰러지지 않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종갓집인 줄..) 너는 근데 그걸 지키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네. 부부가 싸웠어도 함께 와서 제사는 지내고 그 후에 둘이 알아서 해결해야지, 네 감정을 왜 다른 가족들에게 드러내니? 너는 결혼이 시부모에게서 아들만 쏙 빼 가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너에게 시부모는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니? 네 행동은 그저 남편을 휘두르기 위한 행동으로 밖에 안 보인다. 상대의 약점을 잡고 흔드는 치. 졸. 하고 미. 성. 숙. 한 행동이야. 내 말이 틀렸니? "
 
치졸이라.. 37년 사는 동안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결혼은 각자의 집에서 나온 두 사람의 독립이 아니었나? 남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내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결혼이었나..? 10년 동안 아무 말없이 시댁의 크고 작은 일을 모른 척한 적이 없었는데 고작 하루, 한번 제사에 빠졌다는 이유로 치졸하다는 말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치졸'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했다. 사전적 의미로'치졸하다'는 유치하고 졸렬하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치졸한 건 누구일까, 얼굴도 모르는 조부모님과 증조부모님의 제사를10년 동안 군말 없이 지내온 나일까? 아니면 단 한 번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전에 대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한 시어머님일까?
 
다시2024년2월의 기록.
 
어머님, 저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이불속에서 발 구르기만 수십 번을 해요. 그래도 사그라들지 않는 분한 감정 때문에 괜히 옆에 있는 남편의 등짝을 때린다거나 엉덩이를 발로 차곤 합니다. 네 어머님, 어머님 아들이 제 화풀이를 다 받아주고 있다고요.
 
억울하고 또 억울한 마음에 이를 악물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어머님 앞에선 참고 참았던 말들을 이제라도 글로 남기려 해요. 어머님? 저희가 그때 싸운 이유는 어머님의 아들이160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저 몰래 대출받았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돈을 허튼 곳에 쓴 건 아니었지만 돈의 목적과 상관없이 저에게 숨겼단 사실이 가장 큰 배신감을 안겨주었죠. 그런 기분으로 제사에 참여할 수 없었어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선 부부의 화해가 우선이 아니었을까요?
 
▼2등<식단관리중>님 에피소드(혹시 우리 집 영양 관리사세요?)
말 못 하는 엄마
그날은 어느 볕 좋은 봄날, 일요일 오후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아이 재안이가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날 딱 주문했던 팬케이크 기계가 도착했다. 재안이와 그 친구 연두를 위해 팬케이크를 구워주었다. 달콤한 냄새가 주방을 빠져나가 거실까지 퍼져 노오란 햇살과 어우러졌다. 참 따뜻하고 달콤한 일요일 오후였다.
 
그날 이후 거의 매일 연두가 집으로 찾아왔다. 재안이가 없어도 집으로 불쑥 찾아오곤 했다.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손님은 손님이니 어느 정도 구색 갖춘 대접은 해야 했다. 초등생활이라 하더라도 나름의 사회생활이지 않은가. 내 딸 재안이에게 자랑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오전 출근만 하지만 나름 맞벌이에 육아까지 하느라 정신없어 장보기도 벅찼지만, 빵도 구워주고, 김밥도 말아주며 가능한 솜씨를 발휘해서 꼬마 손님을 대접했다. 어쩐지 연두는 집에선 잘 못 먹나 싶을 정도로 빵도 밥도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아이에게‘엄마는 뭐 하시냐’,‘점심은 안 먹었냐’물어보면, 엄마는 집에 있고, 점심도 먹었다고 대답하지만, 연두가 먹는 양을 보면‘굶고 다닌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아픈 가정사가 있는 건 아닌가’,‘연두 엄마 나름의 고충이 있지 않겠는가’같은 생각들이 들 때면 연두 밥그릇에 소시지 하나라도 더 얹어 주었다. 웬만한 어른 한 끼 분량을 매번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볼 때면,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살았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 조금 짠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학부모 회의가 있다는 통지서가 딸아이 손에 들려 왔다. 학기 초 첫 학부모 모임이니 연두 엄마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내게 폐 끼쳐 미안해하면 어찌하나’, ‘감사하다 하면 어떻게 뭐라고 답해야 하나’,‘선물이라도 쥐여주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하는 설레발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빼곡히 들어와 앉았다.‘애들끼리 좋아서 붙어 다니는 건데 내 딸처럼 챙기고 있노라 말해야지’, 할 말도 준비했다.
 
학부모 모임이 끝나자 아니나 다를까, 연두 엄마가 내게로 다가왔다.
“재안이 엄마, 맞죠? 우리 애가 그 집 자주 간다면서요?”
혹여나 연두 엄마가 미안해할까, 부담이라도 느낄까, 나는 가능한 한 넉넉하고 자상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깊고 그윽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있는 내게 연두 엄마가 말했다.
"근데 재안이 엄마! 그 집은 식단 관리를 안해요? 밀가루를 왜 그렇게 많이 먹어요?”
 
나는 순간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싶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고 크게 떠졌고,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기가 막히면 정말로 말문이 막힌다는 것과‘저’, ‘그’, ‘허’, ‘학’, ‘후’, ‘억’ 하는 숨소리도 말소리도 아닌 소리만이 토해지듯 나온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그런 나를 보며 연두 엄마는 입을 채 다 가리지도 않고, 민규 엄마 귀에 속삭였다.
"어머…이분 말을 못 하시나 봐…”
연두 엄마는 민규 엄마의 팔짱을 끼고 총총 사라졌다.
 
▼3등<정지민>님 에피소드(사장님 마음대로 할거면 근로법은 왜 있나요)
이건 내가21살 늦여름에 겪은 일이다. 대학교 다니던 나는 한 학기 쉬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휴학을 결정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댔다. 마침 친구가 자신이 일하는 케이크 카페에 알바가 한 자리 비었으니,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곳은 원장님이 위층에서 케이크를 만들고, 사장님은 밑층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식이었다. 면접을 볼 당시, 원장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 보자. 평일 근무 맞죠? 아 그리고, 저희는 처음 세 달은 수습 기간이라고 생각해서 최저 시급의90%만 지급해요. 법으로 문제 될 것 없는 사실이고 다들 그렇게 받아왔어요.”
 
나는 찝찝했지만, 친구도 그렇게 받는다고 하길래 넘어갔다. 친구는 나를'성실하고 카페 경력이 있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렇지만 나는 카페에서 일한 지2년이 넘었고 기계도 바뀌어 새로 배워야하는 실정이었다. 물론 그걸 면접 볼 때 솔직하게 말했지만 사장님은 그걸 툭하면 걸고넘어졌다. 관둘까 고민했지만 일단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결정을 미뤘다. 하지만 평일 근무임에도 주말 출근을 요구하고, 사전에 얘기되지 않은 부분을30분 전에 이야기하거나 다른 지원자들의 면접이 아직 남아 있으니 수습 기간을 보내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등 내 입지를 불안하게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카페를 다닌 지 일주일 후, 일이 터졌다. 나는 늘 그렇듯30분 일찍 출근했고, 아무도 없는 카페 안에서 사장님은 나를 불러 이야기하자고 했다. 첫마디 일은 어떠냐는 질문이어서, 나는 어려운 부분을 말했다.
 
" … OO쌤이 열심히 하려는 것과 성실한 건 알겠어요. 그건 원장쌤도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에요. 근데OO쌤 얼굴이 어두워요. 전화 받을 때도 퉁명스러워요. 우울해 보여요.”
 
“내일부터는 출근 시간보다1시간 일찍 오세요. 어차피 맨날30분씩 일찍 오니까30분만 더 일찍 오면 되겠네요. 그리고 그1시간 분량의 돈은 안 쳐줄 거예요. 3일에서 일주일 정도 그렇게 나오세요.”
 
여기서부터 이상함을 느낀 나는 당황을 넘어 황당했다. 매일30분 일찍 오는 것은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고, 그저 호의로 인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사하고 열정페이로1시간 일찍 나오라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장님은 매뉴얼에 대한 교육이니 꼭 나오라고 했다. 여태껏 매뉴얼을 물어봐도 아무 대답 없었고, 음료 레시피는 알아서 하라던 사장님은7일이 지나서야 첫 교육을 하겠다고 했다.
 
“무슨 요일 일하고 싶어요?”
“아, 저 면접 볼 때부터 원장님께 평일10시 반부터5시 반까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그렇게 조정했습니다.”
 
“안 돼요. 토요일은 무조건 나오세요. 매니저를 구하려고 했지만 안 구해지거든요. 그러니까OO 씨가 그전까지 직원처럼 일하셔야죠. 솔직히 토요일 바쁜데 어떤 알바가 일하고 싶겠어요? 그런데OO 씨는 하셔야죠. A 쌤(친구)이 소개해 줄 때는 경력도 있고 성실하다고 해서 뽑았는데. 막상 시켜보니까 아무것도 못 하고.”
 
사장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내 얼굴엔 열이 올랐고 가슴은 돌을 얹은 듯 답답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었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저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사람 구하세….”
“아니, 아니, 열심히 할 의지는 있어요?”
사장이 내 말을 잘랐다. 나는 다시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내 모든 말을 막았다. 내가 말할 타이밍이란 타이밍은 깡그리 없애버리고 대답이나 하라고 했다.
“목요일에 보건증 갖고 오세요. 사실 우리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일 잘하고 싸가지 없는게 낫냐 아님, 일은 좀 못해도 인성이 괜찮은 게 나은가 했을 때 우리가 좀 손해 보더라도 인성을 선택한 거예요.”
나는 그 길로 카페를 관뒀다. 알고 보니 그 카페는 월급을 미루는 등 악질로 유명했고, 내가 관둔 지 몇 개월 후 모든 알바생이 단체 퇴사를 했다. 그곳은 새로운 채용공고를 올렸다.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린애들 등쳐먹고 싶으세요? 정신 차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