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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계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건네는 일흔 소설가의 애도 에세이

달밤 숲속의 올빼미

  • 판매가 14,800원
  • 책정보 무선 216쪽 120*205mm 2022년 12월 15일
  • ISBN_13 979-11-6925-3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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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나오키상, 시마세 연애문학상 수상 작가★
장르를 초월한 거장 ‘고이케 마리코’의 국내 첫 번역 에세이!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어떻게 다시 살아 내는지
그 방법을 나는 모른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일흔 소설가가 투명하게 비춰 낸 상실의 세계
 
고이케 마리코는 ‘호러 소설의 명수’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굵직굵직한 수상 이력이 증명하듯 장르를 넘나드는 노련한 작가이기도 하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月夜の森の梟)》는 국내 첫 소개되는 그의 에세이로, 암으로 투병한 배우자의 곁을 지킨 시간 그리고 이후 남겨진 자로서의 시간을 담은 작품이다. 두 사람은 소설가라는 같은 꿈을 품고 같은 지평을 바라보며 37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일본 대중문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나오키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고, 나오키상을 둘 다 수상한 일본 최초이자 유일한 작가 부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나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가 말기 암을 진단받으며, 가루이자와 깊은 숲속, 고양이와 책이 있는 안온한 일상은 한순간에 붕괴된다.
배우자의 죽음 후 상실의 한가운데서 고이케 마리코는 책의 바탕이 된 연재를 수락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는 바깥의 시간과 자신 내부에 고여 있는 시간의 간극을 감각하며, 무수히 피어오르는 슬픔을 글로 비춰 냈다. 일흔의 소설가는 좀처럼 공감이나 위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대한 상실은 극복될 수 없고, 이로 인한 세상과 나의 ‘어긋남’은 사는 동안 계속되리라는, 더없이 솔직한 독백만이 남는다. 

저자소개

지은이: 고이케 마리코


1952년 도쿄 출생. 세이케이대학 문학부 졸업. 1978년 에세이 《지적인 악녀의 권유》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됐다. 1989년 〈아내의 여자 친구〉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1996년 《사랑》으로 나오키상, 1998년 《욕망》으로 시마세 연애문학상, 2006년 《무지개의 저편》으로 시바타 렌자부로상, 2012년 《무화과의 숲》으로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 2013년 《침묵의 사람》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먼로가 죽은 날》 《이형의 것들》 《죽음의 섬》 《신이여 가련히 여기소서》가 있다. 


역자: 정영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강원도 곰배령에서 제주로 터전을 옮기고 유기농으로 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일본어로 된 좋은 책을 만나면 호미 대신 노트북을 펴고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혼밥 자작 감행》 《전쟁과 목욕탕》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산골기업, 군겐도를 말하다》 《집을 생각한다》 《다시, 나무에게 배운다》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 등이 있다.


리뷰

“나이 든 너를 보고 싶었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 섭섭하다.”
 
죽기 몇 주 전,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가 아내 고이케 마리코에게 했다는 말이다. 당시 두 사람 모두 일흔을 앞둔 나이였지만 후지타의 눈에 비친 마리코는 여전히 젊은 여인이었나 보다. 추억을 입은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되기 마련이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풋풋한 시절이, 그들에게도 있었다. 37년 전 만나 사랑에 빠졌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좁은 아파트의 더 좁은 방에서 소설가를 꿈꾸던 두 사람은 책상을 마주 놓고 질세라 쓰고 또 썼다.
 
“동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어느 날 아침 그가 쑥스러운 기색으로 이런 말을 꺼냈다. ‘내가 쓴 소설이 있는데, 한번 읽어 보고 솔직한 감상평을 들려주면 좋겠어.’
그는 내가 다 읽고 소감을 말해 주기 전까지 다른 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원래부터가 장난스러운 상황극 같은 걸 좋아하던 남자였다. 시간을 정해 근처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자세를 단정히 하고 그의 작품을 읽었다. 그리고 서둘러 약속 장소로 갔다. 커피를 앞에 두고 기다리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던데’ 하고 나는 말했다. 질투심이 생길 만큼 대단한 작품이거나, 너무 엉망이라 어처구니없는 작품이면 어쩌지 싶었는데, 둘 다 아니어서 기뻤다. 그 말도 숨기지 않고 전했다.
그는 진심으로 안도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천장이 높고 환한 커피숍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각자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의 회고처럼 ‘행복한 한때’였다. 고이케 마리코는 사별과 코로나를 연달아 겪으며, 소설에서 수천 번은 썼을 고독이 사실은 무엇인지 몰랐다고 고백한다. 고독을 경솔하게 써 댄 업보일 거라고도 했다. 상실이 나의 것이 될 때 사람은 변한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말기 암에 걸리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죽는 것’이 이상적인 죽음이라 입버릇처럼 말하던 후지타 요시나가는 투병 기간 동안 완전히 변했다. 살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 어느 때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무섭게 변해 버렸다.”
 
후지타 요시나가가 말기 암으로 여명 6개월을 진단받은 그날은, 고이케 마리코의 세계와 시간을 나누는 분기점이 됐다. 그날 이전과 그날 이후가 하나의 시간으로 연결되지 않고, 기억과 현실의 경계는 흐려진다. 외부와 나 사이에 생긴 틈은 곧 타인과 나를 가르는 막이기도 했다. 누구나 각자의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지만 그는 안다. 상실의 형태와 슬픔의 양상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르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춰 죽은 남편 이야기를 꺼내거나 내 안부를 걱정스레 묻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배려 차원에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남편의 죽음이 과거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고도 건강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어떠냐 하면, 남편의 투병과 죽음을 겪는 동안 내 내면의 일상과 나를 둘러싼 외부의 일상이 미묘하게 틀어지고 말았다.
외부에 흘러가는 시간과 내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 사이에는 분명히 어긋난 부분이 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마 그 누구도 이 ‘어긋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양쪽의 세계에 걸쳐 있는 고이케 마리코를 가만가만 두드려 깨우는 건, 하루하루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창밖의 풍경 그리고 집 안팎으로 생동하는 작은 생명체들이다. 계절을 반복하며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후지타와 쌓은 크고 작은 추억들이 기척 없이 되살아난다. 슬픔 또한 모습을 바꿔 매일 찾아들 것이다. 남겨진 자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목차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 올빼미가 운다 | 백 년이고 천 년이고 | 고양이들 | 음악 | 슬픔이 고이는 자리 | 작가가 두 사람 | 이상한 일 | 밤에 깎는 손톱 | 빛으로 변해 | 내려 쌓이는 기억 | 최후의 만찬 | 고양이의 꼬리 | 생명이 있는 것들 | 잃는다는 것 | 그날의 컵라면 | 금목서 | 각자의 슬픔 | Without You | 먼저 겪은 사람들 | 죽은 사람의 서재 | 꿀 같은 기억 |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 | 꿈의 계시 | 상실이라는 이름의 막 | 봄바람 | 가상의 죽음, 현실의 죽음 | 수난과 열정 | 설녀 | 애정 표현 | 어머니의 손, 나의 손 | 고치에 틀어박히다 | 기도 | 추모회 | 그때그때의 소꿉놀이 | 샤를 아즈나부르 | 안고 싶고, 안기고 싶다 | 후회 | 벚꽃이 필 때까지 |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 사춘기는 이어진다 | 동물 병원에서 | 무덤까지 | 내선 전화 | 이제는 괜찮아 | 남은 시간 | 죽은 자의 고요한 얼굴 | 새의 공동묘지 | 이어지지 않는 시간 | 신에게 매달리다 | 반쪽 || 연재를 마치고

책속으로

해가 바뀌자 변화는 무시무시했다. 매일 낮, 매일 밤 쇠약해져 가는 게 보였다. 목소리에서 삽시간에 힘이 사라졌다. 깡마른 등의 통증을 모르핀으로 겨우 달래며, 약간이라도 상태가 좋은 날에는 이런저런 묻지도 않은 것들을 그는 내게 이야기했다. 언제 죽어도 좋아.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어. 죽는 건 두렵지 않아. 하지만 생명체로서의 나는 아직 살고 싶어 해.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렸는데, 그게 참 이상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고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 _<남편, 후지타 요시나가의 죽음을 애도하며>에서
 
영정 속 얼굴은 거기서 시간이 멈춘 채 영원히 변치 않는다. 이제부터는 나만 나이를 먹는다. 세월이 흘러, 아들의 영정 앞에 합장하는 노파로 보이는 날도 언젠가는 찾아오리라. 시간은 막무가내로 흘러간다. _<슬픔이 고이는 자리>에서
 
예전에 남편이 내동댕이쳤던 말들. 억지를 부려 화를 솟구치게 하던 말들을 이것저것 떠올려 본다. 그때 그런 소리를 했었지, 이런 소리도 들었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두운 기억’이 몸집을 불려 나간다. 상실의 슬픔이, 흔들흔들 출렁이던 그 희미하고 부드러운 윤곽이 뾰족하고 예리한 무언가로 변해 가는 느낌이 든다. 됐다. 이렇게 하면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겠다. 편안해질 수 있겠다. 든든한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잠시뿐, 오래가지 않았다. _<잃는다는 것>에서
 
언제였던가, 의사인 친구가 재밌는 말을 했다. 남편이 죽고, 내 어딘가에 ‘마리코 극장’이 문을 연 것 아니냐며. 관객도 마리코 혼자, 무대 위 연기자도 마리코 혼자. 매일 마리코가 무대에 올라 어떤 날의 기억을 재현시키면 관객석의 마리코가 그것을 보며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화를 내고, 그러고 있는 것 아니냐며. 질려서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계속해도 된다고 했다. _<꿀 같은 기억>에서
 
버리지 못했던 작년 연하장 속에서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라고 적은 남편의 글씨를 발견했다. 뭔가 틀려 구겨 버린 연하장이었다. 마지막 연하장임을 알면서 그렇게 쓴 남편의 심정을 가늠해 본다. 체념과 받아들임. 숲 어딘가에서 생명이 꺼져 가는 야생동물의 그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_<가상의 죽음, 현실의 죽음>에서
 
어느 날 밤,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은 마음에 눈을 치운다는 핑계로 밖에 나갔다. 문득 정신 차려 보니 눈삽을 쥐고 선 내가 몸을 흔들며 오열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물이 영하의 찬바람에 휩쓸려 갔다. 그때의 나는 틀림없는 설녀였다. _<설녀>에서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죽음이 시간을 멈춘 듯 느껴지는 까닭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들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_<애정 표현>에서
 
요즘 들어 남편의 마지막 얼굴을 자주 떠올린다. 투병 중, 쉴 새 없이 그를 덮쳤던 온갖 괴로운 감정들이 신기할 정도로 깨끗이 사라진 얼굴이었다. 죽음을 직면한 순간 느꼈을 불안과 공포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37년 동안 함께 산 남자가 내게 보인 얼굴 중,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온한 나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얼굴인데도 낯선 남자의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_<죽은 자의 고요한 얼굴>에서
 
때로는 서로를 미치도록 미워했다. 그러면서도 용서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끼 낀 깊은 숲 어딘가에서 가만가만 살아가는 암수 한 쌍처럼, 서로에게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반쪽이 아니었다면 그리 될 수 없었을 것이다. _<반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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